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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몰래 산 오토바이 아내 몰래 산 오토바이 나는 오토바이를 참 좋아한다. 요즈음 광복절이면 폭주족들의 광란의 질주를 보여주는 TV 뉴스를 가끔 보는데, 사실 내가 폭주족의 진짜 원조일 것이다. 무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으니 말이다. 지금의 스쿠터와는 다른, 요즘 이름으로 치면 '클래식 125cc' 모델이었다.당연히 온 동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원래는 자전거를 탔었는데, 어느 날 크게 사고가 나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자전거를 대신해 오토바이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당시 우리 집은 제법 큰 야채 가게를 운영해서 배달원이 여러 명 있었다. 대부분 '짐자전거'라 불리는 크고 무거운 자전거로 야채를 배달했지만, 그중 가장 고참 배달원 형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다녔다.처음에는 나와 상관없는 기계라고만.. 2026. 9. 1.
그때 그 담배는 푸르렀다 그때 그 담배는 푸르렀다 담배 한 대를 피운다. 그냥 피울 때는 모르지만, 뭔가 깊게 생각에 잠길 때나,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피울 때 담배는 참 맛있다. 오늘은 집안에서 간 크게 한 대 피운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피우던 담배가 어느덧 45년 가까이 된다. 해병대 신병교육대 시절 잠시 담배를 끊은 것, 아니 못 피운 기간을 빼면 정말 꾸준히도 열심히 피웠다.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는 나에게 정말 꿀 같은 시기이다. 아들은 직장 문제로 독립한 지 오래고, 딸내미는 짧은 해외 유학 중이라 아내가 없는 낮 시간. 아파트 베란다 앞뒷문을 활짝 열고 한 대 맛있게 피운다. 우리 집은 앞뒤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면 이 시기에 맞바람이 불어 정말 시원하다. 환풍이 잘되니 담배 한 대를 피워도 주민들의.. 2026. 8. 30.
약속을 꼭 지키던 우리 형 약속을 꼭 지키던 우리 형 우리 형은 내게 형이라기보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네 살 터울이었지만 나를 유난히 아꼈다. 형제끼리 싸우는 일이야 흔했지만, 나는 형에게 한 번도 맞아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형은 나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형은 어릴 때부터 못하는 것이 없었다.연도 직접 만들고, 스케이트도 만들고, 개집도 뚝딱 지었다. 텔레비전, 라디오, 청소기,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도 고장이 나면 직접 뜯어 고쳤다. 아니, 고장이 나지 않아도 새 물건만 보면 도대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 참지 못했다.기어이 분해해 속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그런 형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게 자랐다. 전등 하나 갈아 본 적도 없었다.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집안 전등 스위치가 고장.. 2026. 8. 28.
우리 아버지 좀 연결해 주세요 우리 아버지 좀 연결해 주세요 모처럼 시간이 나 휴대전화 카카오톡을 둘러보았다. 정리를 하지 않아 대화방이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한참을 아래로 내리다 보니 '알 수 없음'이라고 표시된 대화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누구인가 싶어 열어 보니 엄마와 나누던 카카오톡이었다. 몇 년 전에도 한 번 열어봤다가 금세 닫아 버린 기억이 난다. 읽다 보면 괜히 울컥하고 마음이 답답해져 더는 볼 수가 없었다.치매를 앓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카카오톡으로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셨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글을 쓰기 힘들다며 페이스톡으로 대화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문장들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날자를 보니 2022년 7월의 어느날이다. 이때까지도 아들이랑 뭔가 대화를 해야 겠.. 2026. 8. 26.
내 코피 때문에 사라진 우리 집 싸움 1등 장닭 내 코피 때문에 사라진 우리 집 싸움 1등 장닭 오늘은 삼복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이다. 달력을 보며 문득 내가 어릴 적, 외갓집 마당을 가득 채웠던 닭들이 생각났다. 당시 외갓집에는 암탉이 수십 마리 있었는데, 수탉(장닭)은 딱 두 마리뿐이었다.그중 대장 노릇을 하던 '넘버원' 장닭은 온 동네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풍기는 생김새와 위엄부터가 남달라서, 동네를 배회하던 들개들조차 우리 집 마당에는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할 정도였다. 맹수 같은 개들과 맞서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는 녀석이었다.반면, 2인자였던 '넘버투' 장닭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대장에게 매일 두들겨 맞는 거의 샌드백 신세였다.아침이 되어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닭장 문을 열 때면, 늘 넘버투가 문 앞을 조급하게 지키고 .. 2026. 8. 24.
[형님이 내게 알려준 인생의 네 가지 조언➁]-도박-발리에서도 화투판의 최종 승자가 되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을 지나, 나는 한동안 해외에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그곳에서도 이상하게 화투와의 인연은 이어졌다.낯선 외국 땅이었지만 한국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고향 이야기와 함께 화투판이 벌어지곤 했다.그리고 그곳에서도 나는 늘 화투판의 마지막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당시 식당을 운영하던 한 사장님이 계셨다.그분은 나 때문에 꽤나 속이 상했다고 한다.자기가 직접 사람을 모으고, 화투판을 준비하고, 자기 집으로 나를 불러서 판을 깐다.하지만 도저히 내 돈은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이다.오히려 반대였다.한번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연달아 큰 점수를 낸 적도 있었다.150점, 180점, 또 150점.다섯 판을 연속으로 큰 점수를 기록했던 날도 있었다.물론 지금 생각하면 운도 따라주었을 것이다.하지만.. 2026. 8. 22.
[형님이 내게 알려준 인생의 네 가지 조언➁]-도박-아내가 화투판 자금을 보태 주던 시절 첫 직장을 거쳐 다른 회사로 옮긴 뒤,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그 회사에는 조금 특별한 문화가 있었다.바로 퇴근 후 직원들끼리 화투를 치는 일이었다.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직장 분위기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업무가 끝나고 직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고스톱 한판을 치는 일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특히 우리 회사 사장님도 화투를 좋아하셨다.직원들과 어울려 게임을 즐겼고, 가끔은 협력업체 사장님들도 함께 참여했다.물론 판이 커지는 날도 있었다.하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딴 돈의 절반 정도는 다시 돌려주는 분위기였다.화투라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이 계속 따고 한 사람이 계속 잃으면 오래 이어갈 수 없는 놀이였다. 그.. 2026. 8. 20.
싸움 1대장, 우리 마누라 싸움 1대장, 우리 마누라 손자병법 모공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故善用兵者,屈人之兵而非戰也(고선용병자, 굴인지병이비전야)"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사람이 최고의 장수다."그런데 이 말을 수십 년 동안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바로 우리 마누라다.우리 마누라는 절대 큰 소리로 싸우지 않는다.그저 나를 한 번 쳐다본다.그리고 짧게 한마디 한다."쯧..."그 순간 나는 안다.아, 오늘 전투는 끝났구나.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과 술잔은 조용히 내려놓고, 나는 병장기를 버린 패잔병처럼 물러난다.손자는 장수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말했다.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마누라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지장(智將).상황 판단이.. 2026. 8. 18.
입이 발뒤꿈치에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할까 입이 발뒤꿈치에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할까사람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본다.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언어를 이용해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관계를 맺는다.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언어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사람의 말 때문에 생긴 피해는 얼마나 많을까?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논어』에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 있다.駟不及舌(사불급설)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한번 혀에서 나온 말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아무리 빨리 쫓아가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 2026. 8. 16.
[ 형님이 내게 알려준 인생의 네 가지 조언 ➁ ]-도박-집들이에서 벌어진 50만 원짜리 첫판 대학 시절 화투와 함께했던 시간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이어졌다.지금 젊은 세대가 들으면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직장 회식이나 모임 뒤에 고스톱 한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어느 날이었다.첫 직장 시절, 나의 사수가 결혼을 하고 집들이를 했다. 부장님, 과장님, 그리고 여러 직원들이 함께 모였다.맛있게 식사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화투판이 벌어졌다.당시에는 이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부장님, 과장님, 사수 그리고 나.이렇게 네 명이 한판을 시작했다.게임 방식은 흔히 하던 357이었다.점수에 따라 돈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3점이면 1천 원, 4점도 1천 원, 5점이면 2천 원, 6점도 2천 원, 7점이면 3천 원을 계산하는 식이었다.화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 202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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