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 내가 살든 부산 온천동 우리 동네엔 극장이 하나 있었다. 뭐 그렇듯이 동네 이름이 온천동이니 극장이름도 온천극장이다.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아 명절이 되면 형이랑 같이 영화도 보러 다녔다.
이제는 그 극장은 문을 닫았고 건물은 남아 일반 상가가 돼버렸다.
이곳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참으로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약속장소 이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그 당시 잘 없든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장소도 이극장 앞이었다.
당시 시멘트로 잘 포장된 극장 앞마당은 우리 같은 애들이 놀기 좋은 장소였다. 그때는 정말 운동장 같이 넓게 느껴졌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가보니 그 크기가 너무 작더라.
어린 나도 이곳에서 자주 놀곤 하였는데 어느 날 동네 또래애들이 모여 놀다, 같은 동네 친구이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애들 몇이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어른들에게 뭐라 하고 영화를 보러 같이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마 아는 사람들과 만나 같이 영화를 보러 갔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친구들은 같은 동네이긴 했지만 옆골목친구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뭐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메인 골목에 살고 그 친구들은 뒷골목, 작은 골목에 사는 친구들이다.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운 편에 속하는 애들로 우리들이랑은 좀 달랐다. 싸움도 잘하고 독했다. 골목에서 놀다 보면 싸움이 나기도 했는데 그 친구들은 쉽게 짱돌 같은 것을 들고 달려들었다. 같은 동네이긴 했지만 우리 골목 친구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애들이 모여 노는 공터도 큰길이 있는 우리 쪽에 많아 이곳에서 모여들 놀지만 그 아이들은 혼자 오는 법이 없고 항상 여러 명이 몰려 우리 골목으로 놀러 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년기 였지만 여하튼 좀 달랐다. 우리랑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그 친구에게 영화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같이 들어간 어른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그냥 영화를 보러 들어가실 때 어린 자기를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하면 웬만하면 데리고 들어간다고 했다. 즉 공짜로 영화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애들은, 어른표 하나에 애하나가 공짜였다. 지금도 이런 게 있나 모르겠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영화관 앞에 있다가 영화를 보러 온 어른들에게 부탁을 한다고 했다.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러면 웬만한 어른들은 손을 잡고 같이 들어가 준다고, 그래서 극장에서 하는 영화는 모두 다 봤다고 자랑을 했다. 갑자기 세상에 이런 일이!!!
어려운 형편은 아닌 우리 집도 영화를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명절이나 유명한 영화 가 들어오면 한 번씩 극장 구경을 가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런 쉬운 방법이 있었다니!
그래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가장 친한 친구 나까지 포함해 3명이 모여 이 이야기를 했고 우리도 시도해 보자고 했다. 일전에 이야기한 목욕탕 사건의 그 친구들이다.
다 같이 몰려 있으면 관리인 아저씨가 나와 쫒을 테니 한 명씩 극장 앞에서 시도를 하고 성공해 들어가면 극장 안 매점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가위 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는데 내가 마지막이었다
앞의 두 친구들은 한두 번의 시도로 쉽게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나 역시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극장입구에서 관리인 아저씨의 눈이 왜 그리 매서운지 , 좀 떨리긴 했지만 매점 앞에서 앞서 들어간 친구들을 만나 서로 웃으며 우리의 성공을 자축했다. 그리고 지금 무슨 영화인지 생각나지도 않지만 그날 그 영화를 두 번이나 봤다.
당시 자리가 정해진 게 아니라 아무나 먼저와 좋은 자리를 잡으면 땡이었고 두 번 본다고 뭐라는 사람도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재미를 들인 우린 그 이후 몇 번을 더 공짜 영화를 즐겼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문화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지금과 달리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시절에 우리의 문화생활은 관리인 아저씨의 고발로 끝이 났다.
친구 중 한 명이 당시 우리 동네 유일한 정육점집 아들이었는데 극장 관리인 아저씨와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 친구 아버지에게 우리들의 문화생활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에게 아주 혼이 났고 어머님은 얼마나 얼마나 영화가 보고 싶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드셨는지 주말에 형에게 돈을 주시며 같이 극장표를 끊어 영화를 보고 오라고 하셨다. 뭐 형님만 표를 사면 됐지만.
그리고 오징어와 땅콩을 싸 먹을 돈 도 같이 주셨다고 했다.
공짜로 극장 구경을 다닐 때 본 영화는 무슨 영화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날 형이랑 같이 본 영화는 왕우 주연의 홍콩 액션 영화 였다. 그리고 극장매점에서 오징어를 연탄불에 구워 팔고, 신문지로 만든 봉투에 담아 팔든 땅콩 도 사 먹었다.
왜 극장에서 먹는 땅콩과 오징어는 더 맛있을까? 요즈음도 가끔 오징어랑 땅콩을 먹어 보아도 그때 맛이 나지 않는다.
다 수입산이라서? 아님 내 입맛이 변해서?
이제는 다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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